잠과 학습의 상관관계: 잘 자야 공부도 잘한다



잠을 잊은 교실,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에게 ‘잠’은 줄여야 할 시간, 혹은 포기해야 할 사치로 여겨지곤 한다. 더 많은 문제를 풀고, 더 많은 강의를 듣기 위해 새벽까지 책상에 앉아있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문화 속에서, 학생들은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4당 5락(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라는 말이 여전히 회자되는 현실은, 잠을 학습의 ‘적’으로 간주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말 잠을 줄이는 것이 성공적인 학습을 위한 최선의 길일까? 뇌과학과 수면 의학의 연구 결과들은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한다. 잠은 단순히 지친 몸을 쉬게 하는 소극적인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낮 동안 학습한 지식과 경험을 분류하고, 저장하며, 단단한 ‘내 것’으로 만드는 매우 적극적이고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 글에서는 잠과 학습의 과학적 관계를 저명한 연구들을 바탕으로 조명하고, 잠을 포기한 학습이 왜 비효율적이며, 성공적인 장기 레이스인 수험 생활을 위해 왜 반드시 충분한 잠을 확보해야 하는지를 논하고자 한다.


뇌의 기억 공장, ‘잠’의 재구성 메커니즘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고 기억하는 과정은 뇌 안에서 정교한 정보 처리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과 같다. 낮 동안의 학습으로 얻은 정보들은 먼저 뇌의 단기 기억 저장소인해마(Hippocampus)’에 임시로 보관된다. 하지만 해마의 용량은 제한적이어서, 이 정보들이 영구적으로 저장되기 위해서는 뇌의 훨씬 넓은 저장 공간인대뇌 피질(Neocortex)’로 옮겨져야 한다.


<시스템 차원의 기억 응고화(Klinzing et al., 2019>

 

 


독일 뤼베크 대학의 얀 보른(Jan Born) 교수를 비롯한 수많은 수면 과학자들은 이 결정적인 정보 이동 과정이 바로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특히 깊은 잠에 빠졌을 때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기억 재구성(Memory Consolidation)’이라 부른다. 깊은 잠, 즉 ‘서파 수면(Slow-wave sleep)’ 중에 뇌는 해마에 저장된 기억들을 반복적으로 재생시키며 대뇌 피질의 신경세포들과 연결시킨다. 이 과정을 통해 단기 기억은 비로소 안정적인 장기 기억으로 전환된다. 낮에 애써 외운 수학 공식, 영어 단어, 역사적 사건들이 하룻밤의 잠이라는 ‘저장’ 버튼을 누름으로써 뇌의 영구적인 지식 서고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잠을 자지 않는 것은, 열심히 작업한 컴퓨터 파일을 저장하지 않고 그냥 전원을 꺼버리는 것과 같다.

 

깊은 잠과 렘수면, 학습을 완성하는 두 기둥

모든 잠이 똑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버드 의대의 로버트 스틱골드(Robert Stickgold)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수면의 단계는 서로 다른 종류의 기억을 강화하는 특화되어 있다.

 


<수면 시간대별 수면의 깊이와 길이의 변화(Kirstin Apel, 2018)>


  1. 비렘 수면 (깊은 잠) : 지식과 사실을 단단하게 비렘 수면, 특히 서파 수면은사실적 기억(Declarative memory)’을 강화하는 데 결정적이다. 이는 교과서 지식, 공식, 단어처럼 의식적으로이것은 무엇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보들이다. 서파 수면 중 발생하는 느린 뇌파는 해마와 대뇌 피질 간의 정보 교류를 촉진하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따라서 방대한 양의 지식을 암기하고 체계화해야 하는 시험공부에는 충분한 양의 깊은 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 (REM) 수면 : 창의적 문제 해결과 기술 연마꿈꾸는 잠으로 알려진 렘수면은절차적 기억(Procedural memory)’과 창의성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절차적 기억은 자전거 타기나 악기 연주처럼 몸으로 익히는 기술이나, 복잡한 수학 문제를 푸는 절차와 같은 것이다. 또한 렘수면 중 뇌는 낮 동안 학습한 정보들을 기존의 지식과 무작위로 연결해보며 새로운 관계를 탐색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는 생각지 못했던 해결책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는유레카의 순간이 나타나기도 한다.



결국, 지식을 단단히 암기하는 힘(비렘 수면)과 그 지식을 응용하여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힘(렘수면) 모두 잠을 통해 길러진다. 어느 한쪽의 잠이라도 부족해지면 학습 능력은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다.



잠을 줄인 학습의 과학적 대가

잠을 줄여 공부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정말 효과가 있을까? UC 버클리의 매슈 워커(Matthew Walker) 교수의 연구팀은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그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실험(Yoo et al., 2007, Nature Neuroscience)에 따르면, 하룻밤 잠을 완전히 설친 그룹은 충분히 잠을 잔 그룹에 비해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무려 40%나 저하되었다. 이는 잠이 부족하면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이는 뇌의 관문인 해마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면 부족의 폐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첫째, 주의력과 집중력 저하다. 잠이 부족하면 이성적 판단과 집중력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둘째, 감정 조절의 어려움과 스트레스 증가다. 잠은 감정의 스위치인 편도체(Amygdala)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잠이 부족하면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사소한 일에도 쉽게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감이 커진다.

결국, 잠을 줄이는 것은 ‘더 오래 공부한다’는 심리적 위안을 줄지는 몰라도, 과학적으로는 뇌의 학습 효율을 최악으로 떨어뜨리는 행위다. 이는 장기적인 수험 생활에서 가장 먼저 지쳐 쓰러지는 지름길과 같다.


최고의 학습 전략은 ‘최소한의 잠’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학습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단순히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뇌가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저장하는 ‘학습의 질’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하루 7~8시간의 잠이 이상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타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은 얼마일까? 여러 연구들을 종합해 볼 때, 전문가들은 최소 6시간을 학습 능률을 위한 마지노선으로 제시한다. 우리의 수면은 약 90분 단위의 사이클을 반복하는데, 최소 4번의 사이클이 돌아가야만 기억 저장에 필수적인 깊은 잠과 렘수면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6시간 미만의 수면은 이 핵심적인 과정을 포기하는 것과 같아서, 아무리 오래 공부해도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4당 5락’이 아니라 ‘6시간 수면 사수’가 더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구호인 셈이다.

주중에 부족했던 잠을 주말에 몰아 자는 것은 어떨까? 이 역시 현명한 전략이 필요하다. 독일의 시간생물학자 틸 뢰네베르크(Till Roenneberg)가 명명한 ‘사회적 시차(Social Jetlag)’라는 개념처럼, 주말에 너무 늦게까지 자면 생체리듬이 깨져 월요일에 더 큰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평소보다 1~2시간 정도만 더 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소 6시에 일어났다면 주말에는 7~8시쯤 일어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수면 빚을 어느 정도 갚으면서도 생체리듬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최고의 성과는 우리의 생물학적 원리를 거스르면서가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할 때 얻을 수 있다. 잠을 줄여 불안감을 잠재우기보다, 최소한의 잠을 지켜 다음 날의 집중력과 기억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 장기적인 수험 생활에서 승리하는 가장 현명한 길이다. 학생이 가진 가장 강력한 학습 도구는 값비싼 참고서나 유명 강의가 아닌, 전략적으로 잘 쉬고 잘 충전된건강한 뇌임을 기억해야 한다.